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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


    며칠 전 웰다잉 상담사 연수에서
    ‘인생의 전환점’에 대해 조별 토론을 했다.
    조원들이 돌아가며 가족의 죽음, 오랜 병과 아픔에 대해 말했고
    나도 딸의 죽음에 대해 얘기했을 때
    거의 동시에 두 명의 참석자들이 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10여 년이 지난 일을 담담히 얘기하는 걸 보고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답했다.
    “괜찮으냐는 질문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죽음을 공부하는 웰다잉 강사들마저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불길에 어떤 사람의 두 다리가 타고 있을 때
    그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뜨겁지 않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내게는 그와 마찬가지의 황당한 말로 들렸다.
    세월이 얼마가 흘렀건 자식의 죽음은 부모에게 현재의 사건이다.

    그런 질문이 그들만의 실수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
    시간의 순서를 거스른 ‘이른’ 죽음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래서 위로하려고 내놓은 말이
    오히려 상대를 고통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오래 전 마음 속으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
    직장 선배의 장성한 아들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공감하지 못했고
    나중에 출근한 그 분의 모습이 너무 담담한 걸 보고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나는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공감하기 어려웠던 비극이 나의 것이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딸 민이는 두 돌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숱하게 병원들을 순례한 결과 어떤 치료도 민이를 살릴 수 없고,
    얼마간의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 끝에 병원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몇 달 동안 한쪽 눈 말고 다른 증상이 없던 민이는
    마지막 두 달간 급속도로 병이 진행되었다.
    명료했던 발음이 느려지고 한쪽 몸에 마비가 찾아왔으나
    민이는 계속 유모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자신의 마비된 팔을 다른 팔로 들어 올려서
    유모차 벨트를 매기 쉽게 도와주던 아이의 모습은
    지금도 떠올리기 몹시 힘든 기억이다.

    어느 날, 유모차에 앉은 채 자신의 신발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민이는,
    몸을 굽혀 신발에 달린 꽃송이 장식 세 개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 민이.”

    신발은 내게 가장 소중한 유품이 되었다.
    태어나 30개월을 보냈던 집에서 가족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은 민이는
    자신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숲과 바람과 구름이 있는 곳에 유골로 뿌려졌다.
    내가 죽은 후엔 민이의 신발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화장하게 될 것이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취재진에게 부탁한 말이 있다.
    심정이 어떠냐고 묻지 말라는 것.
    사별에 대해 갖춰야 할 예의를 알고 싶다면
    이런 말 속에 담긴 뜻을 새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死別者들에게 삼가야 할 말들의 목록을 만들어 봤다.
    나 개인의 생각에 국한된 게 아니라
    죽음 관련 책 속에 나온 내용들을 모은 것이다.


    -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만 지게 하신대.
    - 하느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데려가신 거야.
    - 신의 계획이니 받아들여야지.
    -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해.
    - 이젠 잊어야 하니 보내줘.
    - 산 사람은 살아야지, 괜찮아질 거야.
    - 남은 가족을 보고 열심히 살아야 해.
    - 나도 가족을 잃어봐서 네 마음 잘 알아.


    영화 ‘래빗홀’은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겪은 부모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영화 속 여주인공은 사별자 모임에 참석해서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을 한다.
    “하느님이 천사가 필요해서 아이를 데려갔다고요?
    기껏 천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이는 게 신이 할 일인가요?”

    나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민이의 죽음을 앞두고 지인에게 했던 말이다.
    “신이 하는 일이, 줬다가 뺏는 거라면 가장 비열한 짓 아닌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조용히 귀 기울이다가 답했다.
    “네 말이 맞아. 하고 싶은 말은 내게 다 털어 놔.”

    사별을 겪은 이가 두서 없이 하고 또 하는 말에
    진심을 다해 귀 기울여 준다면,
    그냥 옆에만 있어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잠시 침묵하는 것, 불편을 견디는 것이 위로하는 자의 역할 아닐까.





    사별가족 프로그램 ‘샘터’를 진행하다 보면 그들은 안 먹고, 예쁜 옷 안 입고, 웃으면 안 되고, 행복하면 죄스럽고 놀러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고인을 위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고인에 대해 살아남은 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같이 느끼기도 한다.

     샘터 모임에 오신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모임에 오면 현관에서부터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레퍼토리는 늘 똑같다. ‘짬뽕 한 그릇 먹여 보냈어야 하는데…’를 반복하신다. 집에서 아내가 임종하는 날까지 정성껏 보살피신 분인데 아내가 짬뽕 한 그릇만 사 달라고 조를 때마다 ‘밀가루 음식은 암에 안 좋아. 내가 밥해줄게’, ‘비도 오고 날도 추운데 나갔다가 감기 걸리면 어떡해’, ‘부모님도 계신데 우리끼리 어떻게 외식을 해’ 하면서 거절했는데 아내가 떠나고 나니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늘 땅을 치며 우시는 것이다. 이 아저씨는 아내가 떠난 후 짬뽕은 물론이고 외식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하신다.

     남편이 돌아가신 후 한겨울에도 방에 불을 안 피우고 온갖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무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자녀들이 걱정이 되어 ‘불 좀 펑펑 때세요. 전기세 걱정 마세요’라고 해도 할머니는 ‘니 아버지는 저 추운 냉동 땅에 누워 있는데 내가 어떻게 구들에 불을 펑펑 때느냐’며 도리어 자녀들을 혼내셨다.

     40여일을 금식을 하다가 떠나간 아들을 생각하면서 ‘아들이 굶어 죽었는데 에미가 어떻게 꾸역꾸역 밥숟갈을 밀어 넣느냐’ 하면서 굶다가 몸무게가 17㎏ 줄어들어 휘청거리면서 모임을 오시는 어머니도 계셨다.

     그런데 정말 떠나간 이들은 남아 있는 이들이 이렇게 살기를 바랄까? 샘터 모임이 중반쯤 들어선 5~6주쯤 되면 떠나간 이들이 남겨진 이들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빈 의자 기법이나 미러링 기법, 드라마 테라피를 통해 이 작업을 하고 나서 내가 이분들에게 고인이 외식하지 말고, 불 때지 말고, 밥 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펄쩍 뛴다. ‘수녀님, 아내가 떠나면서 마지막 말이 ‘당신 내 생각 말고 재혼해도 된다’고까지 말했는데 그깟 짬뽕 하나 제가 먹는다고 뭐라 그러지 않죠’, ‘수녀님, 우리 영감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옛날 사람 같지 않게 저를 동네 창피하게 업고 다닌 사람이여’, ‘우리 아들이 얼마나 효자였는데요. 밤늦게 올 때도 꼭 피자나 통닭을 사 와서 같이 먹자던 놈이여’.

     이렇게 이들은 정말 고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고는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한다. 사별의 슬픔과 고통은 한꺼번에 모두 털어내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조금씩 덜어내어 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으로 이별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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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보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사진가: 한명규

    등록일: 2017-06-26 21:57
    조회수: 1992 / 추천수: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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